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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아버님 전상서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2012.1.12  조회수 : 6071 
첨부파일 : 사진_58.jpg사진_58.jpg(파일크기 : 650 K Byte)

내용 :

서랍정리를 하다 손끝에 낯익은 물건이 만져졌어요. 아버지께서 중학교 입학선물로 사주신 네모난 모양의 은빛 시계였지요. 귀에 가져다 대니 시계는 멈춘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엽을 감아 보았지만 여전히 시간은 정지되어 있네요.
"시간을 절대 멈추게 하지 말아라"
예전 이 말씀을 해 주시며 제 팔목에 시계를 채워주시던 아버지의 다정한 음성이 못 견디게 그리워집니다.
아버지! 지금 계신 곳 에서는 고통 없이 자유로우신지요? 그래야만 한다고 아니 꼭 그럴 것 이라고 이 아들은 믿어요. 천국에는 슬픔과,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15년전 어느날!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쓰러지신 후 아버님의 시간은 점점 정지되어 갔지요. 머리 밑으로는 전혀 움직이시지를 못 하셨고, 말씀도 할 수 없어 대화는 눈, 고갯짓으로만 하셔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건 의식 뿐이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의사소통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이 온 가족의 바람이었지요. 하지만 저와 가족들은 그런 방법을 알지 못하였어요. 아니 어쩌면 그런 현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쉽게 인정하고 포기했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중풍엔 그런 상황이 당연한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요즘 그 생각이 짧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진흥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정보화기기를 이용한 여러 사람들의 게시글들을 하나하나 읽었지요.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면서 자꾸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들이 정보화 보조기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코나 이마에 스티커를 붙이고 이 스티커의 움직임을 작은 카메라가 인식하여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는 &quet;&quet;세발머리마우스&quet;&quet; 마우스를 머리 또는 몸의 움직임으로 작동시키는 &quet;&quet;헤드마우스익스트림.

&quet;&quet;이런 정보화 보조기기들을 사용했다면 과연 아버지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셨을까?&quet;&quet; &quet;&quet;지금처럼의 최첨단 기기는 아니더라도  그 당시에도 이런 비슷한 기기가 있지는 않았을까?&quet;&quet; 생각하면 할수록 제 무지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임종하시기 전 장남인 저를 보시고, 계속 무슨 말씀인가 하시려던 아버지. 그러나 그냥 아무런 말씀도 못 하시고 안타깝게 떠나셔야 했지요. 그것이 한인냥 눈도 못 감으시고요. 불효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며 게시글들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아버지!
하늘에서도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이시죠? 그렇다면 저의 모습에 많이 슬프셨겠네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이듬해 제나이 25살 저는 계속되어지는 포도막염에 의한 망막출혈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선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니 최선의 방법은 더이상 나빠지지 않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거였지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어요. 의사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치료하였지만 시야는 점점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그래도 혹시나하며 어머니와 함께 전국 방방곳곳 용하다는 분들을 찾아다녔어요. 3년이상을 매일 침을 맞기도 했고 때로는 약장사를 쫓아다니며 비싼약과, 치료기구도 샀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소용이 없더라고요. 많은 빚만 남긴 채 3년 정도가 지나서 저는 완전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빛을 잃어가는 세상은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석에 눕게 되셨을 때 아버지도 저와 같은 심정이셨겠죠! 반복되어지는 눈의 출혈과 그로인한 아픔도 견디기가 힘들었지요. 귀에도 염증이 전위되는 듯 중이염도 자주 걸렸어요. 그럴때마다 쪼게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아픔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 더 괴로운건 홀로 된 외로움이었고, 눈을 떠도 온통 어둠뿐인 공포였지요.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었어요. 그들의 위로는 마치 절 조롱하는 것만 같았거든요. 친구를 만날 때면 그들에게서 풍기는 자유로움에 오히려 저는 더 외롭고, 초라해졌지요. 약의 부작용으로 퉁퉁 부은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어 집 밖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결국 그 누구도 절 찾아오지를 않더군요. 사람들은 물론 제 가슴속의 작은 희망의 새들도 다 절 떠나갔지요.
제가 그들을 보낸 것일까요? 아니에요. 저의 진심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세상으로부터 잊혀 지는 것을 날마다 두려워했던 행동과는 모순 된 제 마음을요.

그로부터 10여년, 긴 시간 전 늘 외톨이였습니다.
소중하게 차고 다니던 이 시계를 팽개치며 서랍구석으로 던져 버렸죠. 그 당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의미 했어요. 제게 미래는 깜깜한 절벽이었죠. 뒤죽박죽 된 시간 속에서 저의 모든 행동은 불안했어요. 생활 속에서 규칙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다가도 며칠씩 먹지도, 자지도 않았지요.

언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제 모습은 가족들을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습니다. 화가 난다고, 죽고 싶다고 머리를 벽 모서리에 세게 부딪히기도 했으니까요. 밥도 방에서 혼자 먹었고, 화장실도 문밖에 아무도 없을 때만 갔지요. 재활을 하라는 가족들의 권유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제겐 심한 공포였지요. 그래서 다시는 그런 무서운 말이 안 나오게 더욱 신경질적인 행동과 말로 가족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어요. 저의 이런 모습을 묵묵히 보고만 계셔야 했던 어머니는 많이 괴로우셨을 거예요. 아버지도 그 때의 어머니의 마음을 아셨죠? 어머니께서 가끔 그 때 아버지께 푸념을 늘어 놓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남편을 잃고, 1년만에 큰아들까지 시각장애인이 되어가고 있는 믿기지 않는 현실. 어머니는 이런 무거운 짐 남기고 떠난 아버지가 많이 야속 하셨나 봐요. 늘 웃으시던 어머니의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웃음 대신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전 외면했지요. 제겐 그것을 해결 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모른척하는 것이 편했어요. 그리고 점점 혼자만의 우울하고, 편협한 세계로 빠져 들어 갔습니다. 전 장애인이 되어서 참 많이도 울었어요. 시력회복 불가라는 결과를 받고 퇴원하는 날 참을 수없는 서글픔에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습니다.

필요 없게 된 책, 일기장 등등을 정리하며 또 한 번 울었지요. 좁은 방안에서 방향감각을 잃어 문을 못 찾았을 때도 눈물이 나더군요. 다 제 현실이 서럽고, 불쌍해서 흘린 저만을 위한 눈물이었지요. 돌아보면 너무나도 이기적인 값어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조금의 희망도 되어주지를 못할 뿐더러 제 잘못 된 정신 속을 돌아다니는 썩은 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거든요. 그러던 중. 저 때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울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날 새벽 이었어요. 갈증으로 인해 방문을 열고 더듬더듬 물을 찾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방에서 흐느낌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귀를 기우렸지요.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아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
"제발 제 아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세요." "차라리 저의 빛을 빼내시어 제 아들에게 주세요." 어머니의 기도 속에서 제 영혼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단 한번의 욕창도 생기지 않게 하신 효부셨지요. 아버지 병원비, 제 치료비를 마련하시느라 혼자서 모든 경제적인 부분을 짊어지셔야 했던 억척 어머니셨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타인 앞에선 늘 당당하시던 여장부셨지요. 그런 어머니께서 못난 저 때문에 새벽마다 성모상 앞에서 홀로 울고 계셨습니다. 그날 전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사죄하고, 또 반성하고 그렇게 그렇게 아침에 동이 틀 때까지 10년간의 과오를 눈물로 모두 쏟아 냈어요. 그러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지요.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의 햇살도 갑자기 따뜻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또 혼자가 아니라는 포근함은 지금까지도 절 이끌어 주는 힘이 되고 있어요.
하늘에서 저의 잘못 된 행동 다 보시고 아버지께선 화가 많이 나셨을 거라 생각해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찾아뵐 때 회초리 꺾어 갈게요. 이 못난 자식 많이 혼 내 주세요.

사실 그 당시의 저를 생각하면 얼마나 미련하고 잘 못 되어 있었는지 저도 항상 후회돼요. 그래서 많이 부끄럽지요. 육신의 눈만이 진정한 눈이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나 아니더라고요. 가슴을 열어 보니 제 마음에도 눈이 있고, 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도 저의 눈이 있었어요. 컴퓨터 속에도 저의 눈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또 바깥의 세상 속 에도요.

아버지! 요즘 대한민국은 장애인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점점 변화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인식 개선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고요. 국가에서는 각종 보조기기들을 지원해 주고 있지요. 저도 5년전, 그리고 작년 두 번에 걸쳐 센스리더라는 음성프로그램을 지원 받았습니다. 100만원 가까이 하는 기기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보조받아 정말 행복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시각장애인이 될 무렵에도 이미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 때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떠했을까요? 불문가지겠지요.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헛되게 낭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요즘은 장애보다는 오히려 무지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세상입니다. 전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지요.

컴퓨터가 켜진 순간! 온몸으로 스파크가 터지며 풀어진 내 몸의 나사들을 하나씩 꽉 조여 오는 것만 같았죠. 그리고 긴 세월 참아 놓았던 그 무엇인가가 자꾸 눈가로 흘러내릴 것만 같았어요. 그것은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던 제 꿈이었지요. 그 때 알았어요. 꿈은 절 떠난 것이 아니라 제 안에서 저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제 시간은 센스리더와 함께 다시 꿈을 찾아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센스리더는 컴퓨터 속의 글자들을 읽어 주는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이에요. 저를 포함한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활용하고 있습니다. 독서는 물론 인터넷에 들어 가 각종 정보도 찾아 보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요. 지금은 tv방송, 라디오도 컴퓨터로 들어요.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보통 사람들과 별 다를 것이 없어요. 모니터 없이도 자유롭게 컴퓨터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그들보다 나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
현재 저는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저 또한 장애인이 되면서 사람의 체질과 건강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운과 운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지요. 한자가 많은 고서를 가지고 하는 쉽지 않은 공부지만 센스리더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중요부분에 마크도 해놓고, 저 개인만의 정리 노트도 만들어 가며 공부의 즐거움에 밤이 세는 줄 몰라요.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는 메신저를 통한 교류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하고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글도 써 주며 배운 것을 활용하고 있지요. 더불어 더 심도 깊은 공부를 위해서 사이버 대학에 진학을 할 계획도 세웠어요. 센스리더가 안내하는 컴퓨터 안에서는 장애란 제겐 없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저도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가 없으면 야위어 갈 거예요. 컴퓨터속의 제 미래의 양식을 쌓아 놓았거든요.
컴퓨터를 소리로만 사용한다는 것이 처음엔 어렵기만 했지요. 때로는 가족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시각 장애인 컴퓨터 강의를 라디오에 녹음 해 수 차례 반복해서 들으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는 것은 인터넷강의를 하시는 강사님께 전화해서 해결하였어요. 그런 노력 덕분인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컴퓨터 활용 능력이 늘어 갔습니다. 어린조카들에겐 동요 cd도 선물해주고, 가족들 한명 한명에게 전자메일도 보내 그들을 웃게도 했지요. 또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 정보화 방문강의도 받았어요.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직접 집으로 방문하여 일대일의 맞춤형 강의를 무료로 해 주었지요. 그 수업을 계기로 센스리더와 컴퓨터의  더 많은 기능을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면 배울수록 제 시야는 점점 환하게 트여 갔어요. 마치 세상의 넓은 평야가 보이는 것만 같더라고요. 그리고 저 드넓은 평야를 센스리더와 함께 달리기 시작하며 전 보았습니다.
인터넷 컴퓨터 교실의 선생님도, 방문수업을 해 주셨던 선생님도, 복지관의 컴퓨터 선생님도 다 저와 같은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대단한 분들이셨어요. 당신의 몸도 불편하면서 다른 분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이 분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제가 할 수 있다면, 저의 힘으로도 가능한 것이라면 진정 하고 싶었어요. 그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가슴이 벅차 올랐지요.

제가 가진 이 마음! 그것이 국가에서 정보화 기기를 보조 해주는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가 낙오되지 않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행복한 희망을 갖는 것 말이에요. 전 이렇게 행복한 꿈을 안고 더욱 열심히 컴퓨터를 익혀 갔어요. 그 때마다 어김없이 센스리더는 모든 공부를 함께하는 길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1년간 프로그램을 배워 정보처리 기능사2급 시험도 볼 수 있었지요. 2년전 일반인들도 어려워하는 이 시험을 한번에 통과 했어요. 게다가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도 취득했지요.
처음에는 제한시간을 넘겨 문제를 풀었지만 시험을 볼 때는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램 상황에 맞는  설정을 하니 시간을 많이 단축 할 수가 있더라고요. 이 모두 마법 같은 센스리더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컴퓨터 자격증이 있다고 그러면 모두 놀래요. 보이지도 않는데, 컴퓨터 공부를 어떻게 하냐고요. 그러면 센스리더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가능한 경우라면 시범도 보여 줘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람들은  "우리나라 많이 좋아졌네" 라고 감탄 섞인 한마디씩을 합니다.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저도 선입관이 있었죠. 장애인이 되어 보니 우리나라의 복지환경이 평소에 제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쁘지가 않았어요. 전 건강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 나라에 대한 더 큰 감사를 합니다. 물론 모두가 100% 만족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것을 믿어요. 대한민국의 복지는 늘 진행형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저 때문에 너무 심려치 마시고 천국에서 편안히 쉬세요.

아버지!
작년부터 저는 정보화 방문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저와 같은 장애인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지요. 물론 아버지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정말 너무나도 보람 있는 일이에요. 80의 연세의 할아버지. 교통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은 아저씨. 어렸을 적 열병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초등학생 등등 오늘도 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많은 급여는 아니지만 제 마음은 이분들과 함께하며 큰 부자가 되었어요. 꿈을 이루어가는 저의 하루하루는 값어치가 있어요. 시간도 제 발걸음을 따라 행복한 춤을 추며 움직이네요.

망가져버린 아버지의 선물.
은빛 네모난 시계! 고쳐 놓을게요. 그리고 이 은빛 상자 안에 제 꿈들 꽉 채워 넣고 절대 멈추지 않을게요. 힘들어도 꼭 옳은 길을 찾아 걸어 갈 것입니다. 거기에 끝나지 않은 제 꿈이 있을 거라 확신해요. 이 아들!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실 거지요?

15년 전 아버님의 멈춰진 시간!
그 시간도 제가 챙길게요. 그리고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 속의 아버지 몫까지 함께 들고요.
한 때는 가능한 한 빨리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어 한 적도 있었죠.
아버진 아실거예요! 제가 매일 그런 기도 드렸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여기서 살다가 아주 늦게 늦게 아버지를 찾아 뵐 계획이죠. 많이 기쁘시죠!
사랑합니다.
                                                                     장남 배상.
우수사례
이 름 내 용 삭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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