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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준 터치모니터와 팜마우스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2012.1.12  조회수 : 6104 
첨부파일 : 사진_57.jpg사진_57.jpg(파일크기 : 1 M Byte)

내용 :

“여보세요?”
“나다. 저녁은 먹었냐?”
“네.”
“네가 말 한데로 되어줘서 고맙다! 막내도 이제 널 믿는 것 같다.”
아버지와의 안부전화를 끊고, 5년 전 아버지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4, 5년만 집에서 도와주면 공부해서 취업도 하고 독립을 할 수 있어요. 도와주세요.” 아버지와 가족들은 집을 나와서 공부하고 생활하겠다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했다. 뇌병변 1급장애로 혼자서는 밥도 못 먹고 대소변도 해결 못하는 내가 집을 나가서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반대가 심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선천성장애로 어려서부터 서른두 살까지 집에서 TV만 보며 지내온 나로서는 남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직업을 가지며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무엇보다 다급했던 것은 독립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로해짐에 따라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함이 날 조여오고 있었다.

지금은 전동 휠체어와 여러 보조기기들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해야 할 1980년대 무렵에는 보조기기의 개념조차 없었고, 장애인들이 학교에 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여 거의 집에 방치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였고 동생들과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보며 무척이나 부러웠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동생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뇌성마비장애로 인해서 글을 쓸 수 없었던 나로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당시 보급되고 있던 486 컴퓨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스로 글을 쓸 수 없고 다른 작업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TV에서 소개되는 컴퓨터 기능을 보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면 공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 당시 컴퓨터 값이 고가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컴퓨터를 사달라고 할 수 없었고, 대신 컴퓨터를 사기 위해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용돈을 10년 정도 모으니 그 당시 중소 메이커 컴퓨터를 살 수 있는 금액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컴퓨터가 486에서 펜티엄급으로 기술발전이 되어 있었다. 10년 동안 모은 용돈으로 컴퓨터를 구입하였다. 컴퓨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를 사용해보니 가장 어려웠던 것이 뇌병변장애로 인해 경직과 불수의적인 운동으로 일반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마우스를 연습하려고 한 달 동안 마우스와 씨름하였다. 마우스를 붙잡고 30분만 하여도 땀이 비 오듯 온몸으로 흘렀다. 한 달간 연습하다가 안돼서 할 수 없이 윈도우의 내게 필요한 옵션을 활용하여 키보드의 숫자키패드로 마우스를 컨트롤하였다. 키보드로 컨트롤 하는 것은 속도가 느리고 키 버튼을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힘들고 시간이 지체되었다.

2003년 정보통신부의 장애인 방문컴퓨터 교육을 받던 중 방문 선생님이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에 장애인 용품이 있으니 한 번 구경해보라고 하였다. 처음으로 센터에 방문하여 기기들을 둘러보았다. 보조공학서비스의 초기 단계여서 기기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가지 종류의 마우스를 보게 되었고, 그 중에 눈에 띄었던 것이 팜마우스였다. 팜마우스는 손에 쥐고 원형버튼을 손가락으로 방향조절하여 커서를 컨트롤하였다. 그것은 손의 떨림이나 흔들림에도 사용할 수 있고 바닥에 놓지 않고 손에 쥔 채 사용할 수 있어서, 몸의 경직이나 불수의적인 동작에도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여를 받고 집에 가져와 일주일 동안 훈련을 거쳐 능숙해진 결과 숫자키패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10배 이상 향상되었다. 비장애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60~70% 정도의 속도로 향상되었다. 팜마우스를 사용한 이후 복지관의 그래픽이나 여타 컴퓨터 교육들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이 능숙하게 되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1년 동안 초중고 검정고시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 무렵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주최한 장애인보조기구 아이디어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정보통신 보조기기인 팜마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간의 컴퓨터 작업으로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와 설명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공모전에서 입상하였다.
    
검정고시와 공모전을 마친 후 자립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집에서 나와 자립생활훈련과 사회적응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알아보았다. 결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체험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 한 시설을 찾았고, 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달 일정액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집에서 나오는 것과 입소비를 구하는 것에 대해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의 선생님과 상담한 결과 서울의 한 IL센터에서 중증장애인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으로 웹마스터교육이 있고, 교육과정 참여시 일정액의 교육수당이 지급된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교육과정에서 사회적응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더욱이 교육수당을 받아 시설이용료를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바로 신청하였다.

약 1년의 교육과정은 어려웠다. 그 날 학습한 것을 다음 날 과제물로 제출하는 방식의 교육방법 이었다. 주로 이미지 편집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아 마우스 작업이 필수였다. 컴퓨터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딘 나로서는 팜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키보드의 숫자키패드를 통해 작업할 수 없는 기능들을 팜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밤늦은 시각까지 작업하여 다음 날 제출할 수 있었다.

1년 후 웹마스터 교육과정을 마칠 무렵, 좋은 취업을 위해서는 대학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인식하였고, 평소 보조공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나사렛대학교의 재활공학과를 진학하기 위해 수시면접을 보았다. 합격 발표 소식을 전하여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경제적 이유로 대학진학을 반대하였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여러 기관들을 찾아가 상담하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나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한 기자님이 그 동안 검정고시 공부 과정과 공모전 입상, 웹마스터 교육과정의 내용을 취재 후 신문기사로 소개하였고, 그 후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방송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연계 사업을 통해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4년 동안 전액장학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장학재단과도 연계되어 4년 동안의 등록금을 구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단 장학금을 받기위해서는 매학기 마다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대학교 학자금을 스스로 구했고 앞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공교육을 받게 되었다. 대학교 학생증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당당하게 다른 학생들과 평가받고 싶었던 나는 수업준비와 참여, 과제나 발표 준비 등을 적극적으로 하여 1, 2학년 때의 성적은 상위권에 들 수 있었다. 교육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팜마우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보조공학기기들 덕분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수업이 많아져서 공부 하는 것에 벅차기 시작했다. 필기를 할 수 없는 탓에 나의 공부 방법은 녹음을 듣고 눈으로 보며 암기하는 것이다. 필기 없이 눈으로 암기하는 것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장시간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고, 22학점 이상의 수업과 과제, 복습을 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9시간이상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다. 병원에서는 누어서 쉬어야 측만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아야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험기간에는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고, 채 한 두 시간도 못자고 22~23시간을  앉아 있어 허리와 엉덩이에 극심한 통증을 겪기도 했다. 통증보다도 더 힘든 것은 누워서 쉬지 못하고 오랜 시간 앉아 있어 측만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마침 누어서도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보조기기로 터치모니터와 모니터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09년 정보통신 보조기기지원 사업에 신청하여 터치모니터를 지원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터치모니터를 침대가 있는 벽면에 설치하고 지시봉을 터치펜으로 사용하여 침대에 누어서 터치모니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통증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측만의 진행도 늦출 수 있게 되었다.

<터치모니터를 사용하는 모습>

터치모니터와 보조기기들의 사용으로 학습 집중도와 효율이 좋아져서 지난 4학년 1학기에는 학과 수석으로 전액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사무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으로 Microsoft Office Excel과 Microsoft Office PowerPoint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QoLT의 장애학생이공계 인재양성 교육프로그램의 컴퓨터그래픽교육 부문에 참가하여 성적우수자로 뽑혀서 지난 7월 미국과 캐나다 해외 연수를 9일간 다녀왔다.

졸업을 앞두고 지난 8월 다녀온 임상실습 기관으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기관의 담당 선생님들의 평가로는 내가 장애인이면서 같은 장애인들의 어려운 부분들을 잘 파악하고 그것에 따라 기기를 잘 적용한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공부해 온 것과 자립을 위해 노력해 온 것들이 하나의 결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어서 무척 가슴 벅찼다.

처음 실습 기관에 갔을 때, 며칠 동안은 기관에서 별다른 업무를 요청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장애가 중증이어서 무엇인가를 요청하기에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느끼고 임상실습 발표를 준비할 때, 나는 그동안 배웠던 전공과목의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표현했다. 학교에서 팀별 발표과제가 있을 때도 나는 주로 파워포인트 작업을 도맡아 해왔는데, 그것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였고 또한 업무현장에서 중요한 기술이라 생각하였다. 이외에도 동영상 편집 등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 활용들을 익혀 두었다. 이 과정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터치모니터와 팜마우스 등의 정보통신 보조기기들 때문이다.

다시 이 글의 앞부분으로 돌아가 아버지께서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다고 하셨던 말씀은, 내가 자립을 위해 집을 나올 때 ‘4, 5년만 집에서 도와주면 공부해서 취업도 하고 독립을 할 수 있어요.’ 라고 했던 말을 실천하고 결과를 보여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나는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방치되었던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러나 보조공학기기의 발전으로 정보통신 보조기기들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터치모니터와 팜마우스를 사용해 나의 관심과 잠재력들을 하나씩 풀어내어 사회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졸업과 취업, 나의 자립생활에서 이들은 나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다.
우수사례
이 름 내 용 삭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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