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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센스리더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2013.2.13  조회수 : 8835 
첨부파일 : 사진_58.jpg사진_58.jpg(파일크기 : 650 K Byte)

내용 :

요즘 들어 살맛이 난다. 무기력했던 과거와는 달리 컴퓨터를 통해 할 수 있게 된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워드 작성은 물론 인터넷 정보 검색 및 이메일, 메신저 등 할 수 없는 게 없어졌다. 심지어 게임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이따금씩 스트레스 받을 때면, 컴퓨터 앞에서 푸는 그 짜릿함이란! 아무도 모를 것이다.

2005년, 시각장애인으로 등록되던 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잘 살아 왔는데, 자다가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은 일이었다. 평소 시력이 좀 안 좋긴 했지만, 그게 실명으로 향한 준비 단계일 줄 누가 알았으랴? 망막색소변성증은 내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잃어버렸고, 평소 좋아하던 운동도 할 수 없게 됐다. 어디 그 뿐인가? 게임중독자라 불릴 만큼 게임을 좋아했던 나였는데, 게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이제 나도 장애인이 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기만 했다. 가족들 역시 비상이 걸렸다. 멀쩡히 잘 다니던 애가 하루아침에 앞을 못 보게 됐으니 오죽했을까? 아빠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내가 장애인인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엄마는 한숨만 쉬셨다. 동생만이 백방으로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다녔었다. 유명하다는 병원도 알아보고, 양약은 물론 한약도 알아봤었다. 침도 맞아보고, 뜸도 떴다. 무당도 찾아가 보고, 심지어 최면술사에게 의뢰해서 최면을 통해 치료까지 해 봤다. 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살림이었는데, 집은 더욱 가난해졌다. 동생이 버는 족족 내 눈을 위해 쓰는 바람에 생계를 위한 빚만 가득 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엉망이었다.

그러던 중 2009년, 부모님의 설득으로 광주에 있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던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반강제로 입학을 시킨 것이었다. 이곳에 입학을 하게 되면, 안마도 배울 수 있고, 보행 및 점자도 배울 수 있으며,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체육은 물론 컴퓨터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취지였다.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맘을 살짝 흔들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 방 컴퓨터가 녹슬기 직전이라 꼭 한 번 다시 컴퓨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내 생활 패턴이 조금씩 바뀌었다. 다른 수업은 몰라도 컴퓨터 수업이 나를 그 렇게 만든 것 같다. 시각장애인은 일체 컴퓨터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시각장애인들도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비장애인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모니터를 켜지 않는 것이었다. 모니터를 켜지 않는 대신 스피커는 필수! 드림보이스나 센스리더같은 음성출력기를 통해야만 컴퓨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놀랍고, 신기했다. 볼 수 없는데, 볼 수 있다고 할까? 마우스가 아닌 키보드를 통해 컴퓨터를 하는데, 텍스트로 된 양식들은 모두 읽어주었다. 바탕화면에 있는 탐색기며, 내 컴퓨터, 휴지통, 인터넷, 네트워크 등 눈으로 직접 보던 때를 자꾸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첫 수업 시간에는 바탕화면에 있는 이모티콘만 반복해서 들을 정도였다.

그 후,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났음에도 내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매 주 두 시간 밖에 없는 컴퓨터 수업 시간이었지만, 워드 작성법은 물론 넓은마을이나 아이프리같은 텔넷을 통해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메일 주고받기, 메신저 사용하기, 인터넷 검색과 더불어 태그를 통해 나만의 홈페이지 만들기 작업들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5월이 되었다. 학교에서 정보통신보조기기 사업에 대해 공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사업인지 몰라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센스리더를 싸게 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말에 귀가 띄었다. 게다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는 90%나 할인해준다는 것이었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는 기회였다. 1년 중 딱 한 번뿐인 기회라서 어쩌면 더 조급해 했는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8월을 맞이했다.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린 시간, 정보통신보조기기 사업에 신청했던 사람들 중 당첨된 사람을 발표한 날이었다. 오늘 같은 날, 어떤 사람은 울고, 또 어떤 사람은 웃을 것이다. 나는 그 중 웃는 쪽이었다. 내 이름이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내가 아닌 동명이인은 아닐까 얼마나 걱정을 해댔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센스리더를 소지할 수 있게 됐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센스리더는 내게 참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 중이다.

워드 작성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리포트를 쓰고, 시험도 치르고, 전공을 살려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여러 백일장에서 수많은 수상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며, 올 해에는 장애인 개발원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중 대상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매번 C+, B학점만 가득하던 내 성적표에도 모처럼 A+ 학점이 가득하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 네이트온, 버디버디같은 메신저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친목도 다질 수 있게 되었고, 이메일을 이용하여 전자 우편을 주고받음으로써 대인 관계도 넓힐 수 있었다. 아울러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닿아 지금까지도 유대 관계를 돈독히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뿐 아니다. 여러 쇼핑몰을 돌며 쇼핑도 가능해졌다. 비록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어 상품 상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행복했다.

어디 그 뿐인가? 센스독서기를 통해 독서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영화는 물론 드라마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막을 읽어줌으로써 외국 프로그램 또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영화는 먼 나라 이야기였는데, 나도 외국 영화를 시청하고, 일반인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요 근래에는 센스 게임을 알게 됐다. 원래부터 게임을 무척 좋아했던 나로서는 오아시스에서 물을 만난 것과 다름없었다. 직접 눈으로 봤을 때에 했던 게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윷놀이라든가 볼링 등 각양각색의 게임을 하다보면 하루의 피로가 모두 날아가 버린 듯 몸이 가뿐해지는 것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게임이 업로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좀 서운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센스리더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부분도 다소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맞춤법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맞춤법을 가르쳐줘야 할 입장인데, 정작 나 자신부터가 맞춤법을 몰라서야 어디 쓸 수 있을까? 단순히 소리만 듣고 작업을 하다 보니 맞춤법이 취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름대로 한글 맞춤법 규정집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공부를 해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제 맞춤법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글을 접해 보아야 한다는데, 이런 나의 단점을 보완해주기 위한 신의 선물이었을까? 올해에는 한소네U2 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센스리더로 메울 수 없었던 부분마저 정보통신 보조사업으로 인해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나를 보면 성격이 참 밝다고 말한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센스리더를 만난 순간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컴퓨터를 할 수 없었던 시절, 그 때에는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 확실할 거라 여겨진다. 센스리더를 받은 순간부터 내 입가에선 웃음이 그치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보니 성격 또한 덩달아 밝아진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센스리더를 통해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기말 리포트다. 이제 대학원도 얼마 후면 졸업이다. 내년이면 임용고사도 치러야 하는데, 센스리더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 아마 지금도 방 한 쪽 구석에서 신세한탄만 늘어놓고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발전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데, 나의 잃어버린 4년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

나는 그 삶을 센스리더를 통해 보장받고자 한다.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비록 날아가 버렸지만, 이제는 국어교사 겸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시인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두배, 세배 더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 센스리더는 이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런 애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앞으로도 센스리더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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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례
이 름 내 용 삭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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