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상품
  • 홈
  • 사이트맵
  • 실명인증종료
  • 확대버튼
  • 축소버튼

정보통신보조기기

보조기기 검색

보조기기 검색 정보
  • 뷰어 다운로드 하세요
  • 나에게 맞는 보조기기 바로가기
  • 정보통신 보조기기 카다로그 PDF 다운로드
1. 보급사업-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장애없는 세상, 디지털이 그 길을 엽니다.
Home > 알림마당 > 우수사례 글보기

공지사항

컴퓨터는 나의 반쪽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2013.2.13  조회수 : 8102 
첨부파일 : 사진_58.jpg사진_58.jpg(파일크기 : 650 K Byte)

내용 :

자신의 반려자를 흔히 &quet;반쪽&quet;이라 표현한다. 나 또한 아내를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아내 앞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속으로는 &quet;컴퓨터도 반쪽인데.&quet;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는 국민학교 4학년 무렵부터, 나는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가장 앞자리에서야 간신히 보이던 칠판 글씨가 5학년이 되면서는 아예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6학년 때는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야맹증까지 생겼다. 그러나 밝은 곳에서 가까이 있는 사물이나 책을 보는 것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가끔 &quet;김봉사&quet;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긴 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6학년 겨울방학 때에는 망막박리라는 진단으로 몇 차례 수술까지 받았다. 오른쪽 눈은 수술에 실패하여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고, 왼쪽 눈은 그나마 시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2년에 걸쳐 병원을 드나들며 상급학교로의 진학이 어려워졌고, 이후 약 3년간 신문배달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면서 아무런 꿈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 당시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저런 내용을 책으로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스스로 눈이 나쁘다고 생각하였기에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다.

1982년 봄, 우연히 검정고시 제도를 알게 됐다. &quet;그래! 바로 이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quet;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등대를 발견한 기분으로 늦깎이 중학생이 되어 향학열을 불태웠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지만 나는 19세가 되어서야 중학교 공부에 입문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고입, 대입검정고시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대학으로의 진학은 포기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방송통신대학 역시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나에게 완전한 등대가 되어주지는 못하였고, 결국 1987년에 대전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맹학교에 들어와서야 녹음도서의 존재를 알았다. 여전히 정규대학 진학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는 최대한 잔존시력을 활용하고, 독서는 녹음도서를 이용하였다. 녹음도서를 들으면서는 비로소 진정한 독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오직 녹음도서에 의존하던 독서생활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바로 컴퓨터 덕분이었다. 맹학교 고등부 시절, 특별활동 시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해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때는 마냥 신기한 쇳덩어리 보듯 했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대학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실시한 겨울방학 컴퓨터 특강이 계기가 되어 기본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DOS’, ‘베이직’, ‘데이터베이스’, ‘.글’ 등을 배웠는데 특히 ‘.글’은 내가 치는 글자들이 화면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글자를 확대할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조금이나마 화면을 보던 때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얼마나 오랜 시간 앉아있었던가!

얼마 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스용 음성합성장치인 &quet;가라사대&quet;가 나왔다. 가라사대는 요즘 윈도우 환경의 스크린리더처럼 화면을 읽어주는 기기였다.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한창 보급되고 있던 중 이었고, 우리 시각장애대학생들에게도 컴퓨터는 새로운 재활의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장만하고, 나아가 ‘가라사대’까지 장착하게 되었다.

‘가라사대’는 도스용 화면을 읽어줄 뿐만 아니라 &quet;텔릭스&quet;라는 도스용 통신 프로그램의 활용까지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가라사대’와 ‘텔릭스’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는 대학 생활에도 크나큰 도움을 주었고 음성으로 전자도서를 읽게 되었다. -전자도서란 말은 한참 뒤에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과 컴퓨터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컴퓨터광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독서 삼매경에 얼마나 빠져 있었던가! 그야말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며칠 동안 컴퓨터 앞에서 책만 읽기도 하였고,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던 중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아침 출근길을 허둥댄 적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생활에 변화가 왔다. 1990년대 중반이 되어가면서 컴퓨터 환경이 점차 도스에서 윈도우 체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도스라는 제한된 틀에 그 정열이 약간 식을 즈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윈도우 화면에 접근할 만큼의 시력이 되질 않았던 터라 윈도우는 &quet;그림의 떡&quet;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컴퓨터’로 들어가네, 나오네." 라는 말을 할 때 ‘당연히 내 컴퓨터지, 그럼 남의 컴퓨터인가?&quet; 속으로 투덜거리며 파란 바탕화면의 알록달록한 것들만 한참 쳐다보다가 종료하곤 하였다. 그 알록달록한 것들이 아이콘이란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몇 년 후에 &quet;소리눈98&quet;, &quet;아이즈2000&quet; 등의 스크린리더가 나오면서 드디어 윈도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스크린리더보다 훨씬 부족한 기능이었지만 그럭저럭 윈도우 기본 과정을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윈도우 환경과 응용 프로그램, 인터넷 등 활용 범위가 극히 좁은 편이었다. 기본 과정을 배우고도 특별히 음악 듣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역시 시력의 한계가 실력의 한계인가 싶었다. 컴퓨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문서편집이나 책읽기는 여전히 도스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3년도를 지나면서 획기적인 윈도우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이 발표되었다. ‘센스리더’가 그 주인공이었다. 센스리더를 실제로 사용해본 나는 센스리더 하나면 문서편집이나 책읽기,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기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10년을 넘게 동고동락했던 기존의 도스 환경과 가라사대를 과감히 포기하고 드디어 윈도우 환경으로 완전 환골탈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컴퓨터 사용에 있어 그 빈도가 가장 높았던 문서편집과 책읽기도 윈도우 환경에서 이루어졌고, 그 외 몇몇 응용 프로그 램도 사용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에 대한 목마름이 생겨났다. 단순히 어깨너머로, 혹은 귀동냥으로 배우기에 윈도우환경은 너무나 넓은 바다였다. 그러던 차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등장한 것이 인터넷 온라인강의였다. 각종 응용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이는 나 하나뿐이 아니었고, 이것을 시각장애 관련 기관에서도 인식하였던 것 같았다. 다양한 온라인 강의가 시각장애인의 특성에 딱 맞도록,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quet;맞춤식 강의&quet;로 내 귀에 들어왔다. ‘새롬데이타맨’, ‘이야기멀티’와 같은 통신 프로그램에서부터 ‘쿨에디트’, ‘네로’, ‘이지백투’, ‘노턴고스트’, ‘v3’, 인터넷과 검색 엔진에 이르기까지,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강의가 올라오는 대로 모두 청취하였다.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고 이것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시켜주는 센스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당시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몇 시간 맡고 있었던 나는, 이렇게 익힌 기술과 쌓은 지식들을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수하였고, 신기해하는 한편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 이렇게 들은 강좌가 40개를 훌쩍 넘었다.

잊히지 않는 강의가 하나 있다. 전혀 접근이 되지 않았던 휴대폰 관리 프로그램을 센스리더가 읽어주게 되었다. 휴대폰이 새로운 나의 취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 전혀 없었고, 비장애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그냥 자판과 기능을 외워서 감각적으로 사용하던 때였다.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였고, 또한 핸드폰의 키를 외워서 문자를 쓰는 것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거의 포기하고 있던 차였다. 또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도 일일이 눈을 빌려 입력하기도 힘들어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 혼자 스스로 문자와 전화번호, 그룹 관리 등의 휴대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연결하여 친구와 가족, 직장 동료 등 100명이 넘는 전화번호를 입력했고, 그룹 지정뿐만 아니라 개인별 벨소리를 다르게 하는 스페셜 착신관리까지 혼자서 처리하게 되었다. 보통 정안인 보다 더 휴대폰을 잘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었다.
어느 해였다. "마누라보다 컴퓨터가 더 좋지?"라는 아내의 핀잔에 결정적으로 반격할 기회가 왔다. 아내는 지역 도서관내 주부 인형극단의 단장을 맡고 있었다. 인형극 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인형극 대사와 배경음악을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추가 비용을 들여가며 이를 편집하고 있었다. 어느 날 녹음을 하긴 했는데 상당 부분 편집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편집까지는 해 줄 시간이 없다는 연락에 아내는 매우 당황하며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슬쩍 지나가는 말로 "당신 이런 거 편집도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어왔고 -별로 기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도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한번 해 보지, 뭐." 아내가 1차 녹음본으로 인형극 연습을 하러 간 사이에 난 예전에 들었던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 강의를 다시 찾았다. 잊어버렸던 기능을 다시 확인하고 필요한 메뉴들의 위치도 재확인했다. 1차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와 함께 편집을 시작했다.
"이 부분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니 좀 줄였으면 좋겠는데."

"이 대사는 너무 작게 들리니 소리를 키우면 좋겠고."
나는 하나씩 아내의 요구에 따라 편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와 당신 정말 대단해.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네?"
은근히 띄워주는 아내의 말에 나도 흥이 나기 시작했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넣어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가능해요?"
"물~론 가능하지." 나는 더 신이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음악 소리가 점점 줄어들면 좋겠어요."

요구는 끝도 없이 계속 되었고 나는 이를 100% 충족시켜 주었다. 편집 과정을 마친 파일을 오디오 CD로 제작해 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CD로 인형극 연습을 하고 온 아내는 아주 흐뭇해하며 "당신 정말 대단해요. 당신 덕분에 경비도 훨씬 아낄 수 있었고, 다들 훨씬 훌륭해졌다고 칭찬이 자자해요."라며 찬사를 보내왔다. 오디오 편집과 CD 제작은 알고 보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인 기술로 보였나보다. 그 후로도 어깨 힘주며 몇 번 같은 일을 더 해 주었다.

아들 녀석이 "아빠는 컴퓨터로 매일 공부만 하지요?"라고 질문하기에 약간 찔리긴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 되어 있는 센스리더와 컴퓨터! 이제는 거의 전맹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컴퓨터가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생활하였을까 싶다. 학생 때는 학업과 취미생활의 대부분으로, 직장을 가진 후에는 업무 처리 및 서류작성, 학습자료 제작에 사용하는 등, 컴퓨터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 되어있다. 최근 센스리더는 &quet;센스 딕셔너리&quet; 기능까지 추가되어 영한사전뿐만 아니라 한영, 국어사전, 심지어 노래방 검색까지 지원함으로써 그야말로 막강 센스리더가 되어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요즘도 직장에서의 하루는 &quet;센스리더가 실행되었습니다.&quet;라는 멘트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기쁠 때는 기쁜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더 나아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혀갈 때의 그 충족감은 컴퓨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quet;컴퓨터 중독자&quet;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성이 메말라가는 것을 경계할 뿐이다. 요즘은 ‘책마루’, ‘DF-R’, ‘점자정보단말기’ 등 컴퓨터를 대체할 최신 정보기기가 많아지긴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여전히 센스리더와 하나 된 컴퓨터는 나의 최고의 반쪽이다.

새로 맹학교에 입학하는 중도 실명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재활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안마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반드시 배워나가야 할 것이 컴퓨터입니다. 컴퓨터는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일반인과 소통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도구이니 꼭 익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우기 바랍니다!"라고 말이다.

내게는 반쪽이가 둘 있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적합한 반쪽이 말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하면서 대화하는 반쪽이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언제나 윙윙 소리를
내며 완벽한 비서처럼 응해주는 반쪽이!
우수사례
이 름 내 용 삭 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입력 정보   
한국정보화진흥원
  • 개인정보처리방침
  • 보급사업 운영관리지침 HWP 다운로드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찾아오시는길
  •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대구본원 : 대구광역시 동구 첨단로 53(41068) 대표전화 : 053-230-1114
서울청사 :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4(04520) 대표전화 : 02-6191-2114
제주 NIA 글로벌센터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중앙로 68-11(63568) 대표전화 : 064-909-3114
COPYRIGHT(C) 2017 KOREA AGENCY DIGITAL OPPORTUNITY&PROMOTION. ALL RIGTHS RESERVED.